문화
대구미술관 '속삭임' 전, 작은 목소리가 바꾼 세상
작성 : 2026.07.10. 오후 08:34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소외된 작은 목소리들을 예술적 시선으로 포착해낸 전시가 대구에서 막을 올렸다. 대구미술관이 기획한 ‘바깥을 향한 속삭임’은 법과 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예술이 어떻게 진실을 기록하고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난 6일 열린 전시 공개회에서 독일 출신의 마리오 파이퍼 작가는 예술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며, 발언권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작가의 본분임을 역설했다. 이번 전시는 권력이 통제할 수 없는 가장 은밀하고도 강력한 언어인 ‘속삭임’을 통해 우리 시대의 불안과 희망을 조명한다.전시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마리오 파이퍼는 법과 미디어가 진실을 구성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해온 시각예술가다. 그가 선보인 영상 작품 ‘어게인(Again)’은 독일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난민 폭행 사건을 재구성하여 사법 체계가 외면한 진실을 추적한다. 이주민 배심원단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다각도로 해석하는 이 작품은 인종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끌어올린다. 작가는 법원이 판결을 포기한 지점에서 예술이 답을 찾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작업을 시작했으며, 제목에 담긴 중의적 의미처럼 역사의 반복을 경계하고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동독 출신으로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목격하며 성장한 파이퍼의 배경은 그의 작업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정치적 상황이 개인의 사고와 감성에 미치는 파급력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며, 사회적 관계망 안팎을 관찰하는 예술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의 작품은 8년 전의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혐오와 배제가 여전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준다. 이는 예술이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적인 인권의 가치를 수호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빛의 잔상과 신체적 감각의 흔적을 탐구해온 최지목 작가는 시각적 지각의 불완전성에 주목한다. 그는 사진이나 인공지능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시각적 경험, 즉 눈을 감았을 때 나타나는 잔상과 강한 빛 뒤에 남는 형태를 회화로 구현했다. 신작 ‘다스 빌트(Das Bild)’는 관람객이 직접 눈을 감고 작가가 포착한 감각을 체험하도록 유도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보는 행위’의 본질에 의문을 던진다. 이는 객관적 진실이라고 믿는 세계가 사실은 개인의 지각이 만들어낸 잠정적인 이미지일 수 있다는 철학적 성찰로 이어진다.

전시를 기획한 이정민 학예연구사는 ‘속삭임’이라는 행위가 지닌 관계의 밀도에 집중했다. 큰 소리로 외치는 구호보다 낮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속삭임이 오히려 권력의 감시를 피해 시대를 움직이는 저항과 변화의 기운을 먼저 감지한다는 설명이다. 역사적으로 공개적인 발언이 금지된 시대마다 사람들은 은밀한 대화를 통해 희망을 공유해 왔으며, 이번 전시는 그러한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어떻게 사회적 흐름을 바꾸는 신호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던 미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대구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현대 미술이 사회적 갈등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극적인 고발보다는 조용하고 끈기 있는 ‘속삭임’의 방식을 택함으로써 관객들이 스스로 사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했다.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동시대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예술의 따뜻한 연대감을 선사한다. 작은 목소리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공명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의 마음속에 깊은 잔상으로 남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조용한 동력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