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프랑스대사관이 미술관으로”…한·불 대표 작가 만났다

작성 : 2026.09.08. 오후 06:30

태극기와 프랑스 국기가 나란히 걸린 공간에 이배의 역동적인 ‘붓질’ 작품이 자리했다. 울창한 정원에는 프랑스 조각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금빛 조각이 연꽃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외교와 보안을 위해 사용되던 주한프랑스대사관이 한시적으로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2인전 ‘이배-장-미셸 오토니엘: 교차된 시선’이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 작가 이배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조각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 약 20점이 대사관 정원과 관저 곳곳에 설치됐다.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두 작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적인 미술관이 아닌 보안이 엄격한 외교 공간을 관람객에게 공개했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전시로 꼽힌다.

 

두 작가에게 한국과 프랑스는 단순한 활동 지역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배는 1990년대 파리에 정착한 뒤 30년 넘게 프랑스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생폴드방스 매그재단과 파리 기메박물관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현재 프랑스 남서부 보리외앙루에르그 수도원에서도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오토니엘 역시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며 국내 관객들에게 작품을 소개했다. 현재는 부산 F1963에서도 개인전을 열고 있다.

 


두 작가가 서로의 나라에서 받은 경험과 영감도 이번 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배는 파리에서 구입한 저렴한 바비큐용 숯을 작품 재료로 사용하면서 독특한 검은 화면을 만들어왔다.

 

오토니엘은 한국에서 접한 연꽃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국에서 만난 연꽃에 매료된 그는 이를 바탕으로 ‘블랙 로터스(Black Lotus)’ 연작을 제작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작업해온 두 작가를 이번 전시에서 연결하는 공통점은 ‘불’이다. 이배는 나무를 태워 만든 숯을 주요 재료로 사용한다. 오토니엘은 모래의 주성분을 고온에서 녹여 만든 유리를 작품에 활용한다. 불을 거쳐 만들어진 서로 다른 재료가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어준다.

 

전시가 열리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의 건축적 특징도 작품과 어우러진다. 대사관 건물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배운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 김중업이 설계했다.

 

하늘을 향해 버선코처럼 솟아오른 지붕과 정원, 건물의 독특한 구조는 이번 작품 설치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작품을 단순히 건물 안에 배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사관 자체를 전시 공간의 일부로 활용한 것이다.

 

이배의 작품 가운데 한 점은 건물 옥상 펜스 바깥쪽이라는 이례적인 장소에 설치됐다. 보안 문제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건축물과 작품을 하나의 풍경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작가의 판단에 따라 해당 위치에 작품을 놓았다.

 


야외 정원에서도 두 작가의 작품이 기존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오토니엘의 금빛 연꽃 조각과 이배의 브론즈 ‘붓질’ 조각이 정원의 풍경 속에 자리했다.

 

목걸이 형태의 작품 ‘Gold Necklace’도 설치 장소를 세심하게 고려했다. 작가는 근무동의 유리 벽면에 작품이 반사되는 효과까지 고려해 직접 위치를 정했다.

 

전시는 작품뿐 아니라 외교 공간과 건축, 정원이 함께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활동해온 두 작가의 작품이 주한프랑스대사관이라는 공간에서 만나면서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자리도 마련됐다.

 

요한 르 탈렉 주한프랑스대사관 문화교류협력 담당관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매년 한국 작가 한 명과 프랑스 작가 한 명을 선정해 2인전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려면 사전 신청이 필요하다. 방문객은 주한프랑스대사관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지되는 일정에 맞춰 신청해야 한다.

 

‘이배-장-미셸 오토니엘: 교차된 시선’ 전시는 내년 1월 8일까지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