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 탄생 110주년 '역대급' 회고전

작성 : 2026.05.18. 오후 06:36
 한국 현대 추상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유영국 화백의 예술 세계가 탄생 110주년을 맞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 야심 차게 기획한 근대 거장 조명 프로젝트의 첫 단추로, 작가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방대한 작품군을 한자리에 모았다. 기술이 인간의 창의성을 위협하는 시대에 회화 본연의 가치와 인간의 순수한 직관이 지닌 힘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의 구성은 작가가 전업 작가로서 독자적인 길을 걷기로 결심했던 1964년을 기점으로 삼아 독특한 시간적 흐름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이 시기를 축으로 삼아 도쿄 유학 시절의 전위적인 실험 정신을 마주하고, 다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추상의 정점에 도달한 노년기의 평온한 심상 세계에 닿게 된다. 170여 점에 달하는 전시작 중에는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유작들이 대거 포함되어 한국 모더니즘 미술사의 공백을 채우는 학술적 의미도 더했다.

 


유영국 예술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산'이다. 그는 평생 산이라는 자연물을 매개로 삼아 그 속에 담긴 보편적인 질서와 숭고한 정신성을 탐구해 왔다. 작가에게 산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합일되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이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적 선으로 구현된 산의 형상을 통해 추상미술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작가의 마음속 풍경과 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거장의 유산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도 돋보인다. 미술관은 문학, 음악,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전시의 외연을 확장했다. 유명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 가이드는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며, 가을에는 도심 대형 건물의 외벽을 유영국 특유의 원색으로 물들이는 미디어 파사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이는 박제된 과거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의 살아있는 문화 축제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인공지능이 예술의 영역까지 침범하며 창작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오늘날, 유영국의 캔버스는 인간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노동의 가치와 예술적 투쟁을 웅변한다. 작가가 평생 고수해 온 철저한 작가 정신은 디지털 시대의 관람객들에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감각과 성찰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화려한 색면 뒤에 숨겨진 고독한 탐구의 흔적들은 관람객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번 회고전은 한국 근대 미술이 이룩한 역사적 성취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읽어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거닐며 작가가 평생을 바쳐 구축한 자연의 정수와 마주하게 된다. 시대를 초월한 예술가의 열정이 담긴 이번 전시는 오는 10월 말까지 이어지며, 방문객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자신만의 산을 발견하는 특별한 여정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