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뇌썩음 주의! 韓, 전 세계서 ‘AI 쓰레기’ 영상 압도적 1위
작성 : 2025.12.30. 오후 05:42
유튜브를 켜면 끊임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섬네일과 묘하게 기괴한 영상들. 별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이 콘텐츠들이 우리의 뇌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면 어떨까. 최근 한국이 전 세계에서 인공지능이 생성한 저품질 쓰레기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AI Slop)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라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발표되어 온라인이 발칵 뒤집혔다.30일 글로벌 영상 편집 플랫폼 카프윙의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전 세계 AI 슬롭 소비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한국발 AI 슬롭 유튜브 채널의 누적 조회수만 무려 84억 5000만 회에 달한다. 이는 2위인 파키스탄의 53억 회나 3위 미국의 34억 회를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린 수치다. 우리가 매일같이 소비하는 영상 5개 중 1개는 사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 대량으로 찍어낸 질 낮은 복사판이었다는 의미다.
AI 슬롭이란 인공지능(AI)과 쓰레기를 뜻하는 단어 슬롭(Slop)의 합성어다. 인간의 창의성이나 진정성 없이 오직 조회수 수익만을 목적으로 AI가 기계적으로 만들어낸 저급 콘텐츠를 일컫는다. 문제는 이러한 슬롭 콘텐츠가 단순히 재미없고 조잡한 수준을 넘어, 이용자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지적 능력을 퇴화시키는 브레인롯(Brainrot, 뇌 썩음) 현상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얼마나 심각하면 영국 옥스퍼드 사전과 미국 메리엄웹스터가 올해의 단어로 브레인롯을 선정했을 정도다.
실제로 한국의 유튜브 생태계는 이미 AI 슬롭에 점령당한 상태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 한국의 한 채널은 누적 조회수 20억 회를 기록하며 연간 약 58억 원의 광고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채널은 특이한 야생동물이나 반려동물이 싸우는 자극적인 영상을 AI로 생성해 올린다. 싱가포르의 한 채널은 강아지가 반복적으로 밥을 먹는 장면만 보여주며 어린이들의 시청을 유도하고, 인도의 채널은 헐크와 악마가 싸우는 기괴한 설정을 반복한다. 이런 영상들은 제작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면서도 자극적인 화면으로 시청자를 홀려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로 자리 잡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AI 슬롭이 온라인을 넘어 현실 세계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AI로 만든 가짜 의사가 실제 전문가인 척 등장해 특정 건강기능식품이나 의료품을 추천하는 허위 광고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 의사의 모습에 속아 넘어간 소비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영상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흐려진 이용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업계 전문가들은 AI 슬롭이 온라인 공간을 가득 채우면서 이용자들이 영상의 진실성을 판별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AI 기반의 딥페이크 범죄나 사기가 판을 칠 수 있는 최적의 토양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부는 AI 생성물에 표시 의무를 부여하는 AI 기본법 시행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의 사례처럼 플랫폼 유통 단계 이전부터 강력하게 필터링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표시만 한다고 해서 알고리즘을 타고 퍼지는 유해 콘텐츠의 확산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다.
유튜브 측은 생성형 AI는 도구일 뿐이며, 저품질 콘텐츠를 걸러내는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규 가입자에게 추천되는 영상의 20% 이상이 슬롭인 것으로 나타나 플랫폼 책임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개인의 취향이 파악되지 않은 빈틈을 AI가 생산한 압도적인 양의 쓰레기 콘텐츠가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의학계와 교육계는 올바른 디지털 시청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우리의 전두엽을 보호하기 위해 유튜브의 자동 재생 기능을 즉시 해제하라고 조언했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수동적인 시청이 아닌, 스스로 콘텐츠를 선택하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심리학회(APA) 역시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넘기는 스크롤 습관이 도파민 수용체를 무감각하게 만들어 더 강한 자극만 찾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는 AI가 지식은 처리할 수 있어도 경험을 통해 얻는 지혜는 인간의 영역이라며,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추가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우리가 보는 영상이 우리의 뇌를 건강하게 하는지, 아니면 소리 없이 썩게 만드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