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낙서인가 예술인가" 뱅크시 그림 지우는 예산 3억 논란

작성 : 2026.08.10. 오후 08:30
 영국의 정체불명 거리 예술가 뱅크시의 작품들이 런던 시내 곳곳에 등장하며 막대한 공공 예산을 집어삼키고 있다. 최근 영국 BBC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뱅크시의 주요 작품 3점을 관리하고 철거하는 데 투입된 세금만 약 15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2억 86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단순한 예술적 해프닝을 넘어 공공시설 훼손에 따른 복구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가장 뜨거운 논란의 중심은 런던 왕립사법재판소 외벽에 그려진 벽화다. 가발을 쓴 판사가 시위대를 억압하는 풍자적 내용을 담은 이 그림은 뱅크시 본인이 자신의 작품임을 공식 확인하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해당 건물이 영국의 2급 문화재로 지정된 탓에 법원 당국은 원형 복구라는 법적 의무를 짊어지게 됐다. 레이저 장비를 동원한 고난도 제거 작업과 경비 인력의 초과근무 수당 등으로 이미 8만 5300파운드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었으며, 완전 복구가 불가능할 경우 석재 자체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납세자의 권리를 앞세운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보수당의 닉 티머시 의원은 공공 건물을 훼손한 행위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뱅크시가 직접 복구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치주의를 상징하는 사법 기관의 외벽에 낙서를 남기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이며, 이를 지우기 위해 시민들의 혈세를 쏟아붓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논리다. 그는 예술가에게 공공 기물을 파손해도 처벌받지 않을 특권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예술계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미술평론가 에스텔 러벗은 뱅크시의 작품이 지닌 막대한 관광 효과와 대중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뱅크시의 벽화는 누구나 무료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정치적으로 분열된 사회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버킹엄 궁전을 보러 오는 관광객만큼이나 뱅크시의 흔적을 쫓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투입된 비용 이상의 무형적 가치가 창출되고 있다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뱅크시 작품으로 인한 비용 발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워털루 플레이스에 설치된 조형물의 안전 관리와 펜스 설치에만 6만 파운드가 들었고, 경찰 초소에 그려진 피라냐 벽화 역시 철거 비용으로 수천 파운드가 지출됐다. 흥미로운 점은 철거된 경찰 초소가 오는 11월 재개관하는 런던박물관의 전시물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이다. 거리에서는 지워야 할 낙서 취급을 받던 작품이 박물관에서는 보존해야 할 유물로 대접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런던 당국은 뱅크시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공공 예산의 효율적 집행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추가적인 복원 작업이 예정되어 있어 최종 비용은 현재 집계된 금액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뱅크시의 작품이 도시의 명물로 남을지, 아니면 납세자들의 분노를 사는 골칫덩이로 전락할지는 향후 영국 정부의 대응 방식에 달려 있다. 예술적 자유의 경계와 공공 책임의 범위를 둘러싼 런던의 진통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