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밀양부터 용인까지, 극장 밖으로 나간 배우들

작성 : 2026.08.19. 오후 10:36
 정형화된 극장의 틀을 깨고 삶의 현장으로 뛰어든 예술가들이 우리 사회의 숨겨진 단면을 조명한다. 올해로 24회째를 맞이하는 서울변방연극제가 오는 9월 2일부터 20일까지 서울을 비롯해 경남 밀양, 충남 홍성, 경기 용인 등 전국 곳곳에서 펼쳐진다. ‘흩어져, 모든 것이 엉키는 가운데’라는 슬로건 아래 열리는 이번 축제는 하나의 중심지로 모이는 대신, 서로 다른 지역과 공동체의 목소리가 느슨하게 연결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적 연대를 지향한다.

 

이번 연극제의 가장 파격적인 시도는 공연 장소의 확장이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의 ‘반도챗 에피소드 1’은 반도체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마을 현장을 직접 찾아간다. 거대한 공장이 가동되기 위해 필요한 전기와 물, 도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사회의 갈등과 변화를 밀양 고정마을과 용인 파지사유 등에서 만담 형식으로 풀어낸다. 이는 관객들이 개발과 에너지 문제라는 무거운 주제를 현장의 공기와 함께 감각하게 만드는 실험적인 시도다.

 


해외 예술가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싱가포르의 샤이풀바리 모하마드는 한국의 일상적인 공간인 노래방을 무대로 삼은 ‘노래방 디플로마시’를 선보이며 문화적 평등의 의미를 묻는다. 일본의 공연단체 올타는 노동과 소비주의의 근원을 파고드는 ‘영원한 노동’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성찰하며, 대만의 유펑라이는 타이둥 습지에 쌓인 식민의 기억을 부족의 삶과 연결해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이들은 각기 다른 국가의 경험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건드린다.

 

국내 창작진들은 도시의 흔적과 몸의 기억을 기록하는 데 집중한다. 노네임프레스의 ‘낯선 은신처’는 재개발을 앞둔 도시의 풍경 속에서 미처 발화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수집해 기록하고, 허성욱 작가는 몸에 새겨진 기억과 현재의 감각이 충돌하는 지점을 탐구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화려한 무대 장치 대신 실제 장소가 가진 역사성과 사물들이 내뿜는 아우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단순한 관람을 넘어 연구와 기록을 중심으로 한 ‘필드워크’ 프로그램도 강화됐다. 연구자 이혜원은 참여자들과 함께 한강 샛강 생태공원과 낙산공원을 걸으며 지의류와 균류를 관찰하는 ‘분해의 연극’을 진행한다. 또한 이지연은 순록의 먹이를 따라 한국과 핀란드를 잇는 리서치 과정을 렉처 퍼포먼스 형태로 공유한다. 이는 예술이 결과물로서의 공연뿐만 아니라,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축제 기간 중에는 담론 프로그램인 ‘계간변방’과 뉴스레터 ‘잡말레터’, 그리고 관객들의 목소리를 담는 비평단 ‘단편한글’이 함께 운영되어 관객과의 소통 창구를 넓힌다. 서울변방연극제는 1999년 첫발을 뗀 이후 변방이라는 이름이 가진 역동성을 바탕으로 주류 예술이 놓친 가치들을 꾸준히 발굴해왔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이번 축제의 상세 일정과 예매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예술과 삶이 엉키는 생생한 현장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