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수천 년 도자기 역사에 정면 반박…'불경하다'는 말까지 나온 전시

작성 : 2025.12.05. 오후 05:55
 수천 년에 걸쳐 도예가들이 추구해온 것은 물과 불의 힘 사이에서 찾아낸 완벽한 균형의 미학이었다. 가마에서 나온 결과물이 조금이라도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 없이 깨뜨리는 행위는 완벽을 향한 장인의 집착과도 같았다. 그러나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도예 작가 3인의 그룹전 '불경한 형태들(Irreverent Forms)'은 이러한 도예의 오랜 역사와 전통적 미학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전시장에는 일부러 깨뜨린 달항아리 파편들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서 있고, 물속에서 서서히 형체를 잃어가는 흙집의 영상이 흐른다. 완전함을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무너짐과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이 '불경한' 시도들은, 역설적으로 도예라는 장르의 관습을 뒤집는 해방감과 묘한 쾌감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이헌정, 김주리, 김대운 작가는 세대도, 작업 방식도 각기 다르지만 '흙'이라는 재료의 불안정성과 예측 불가능성에 매료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들은 스스로를 전통적인 '도예가'의 틀에 가두지 않는다. 도예로 시작해 조각과 건축으로 영역을 확장한 이헌정, 흙을 주재료로 설치 미술을 선보이는 김주리, 도예의 방법론을 빌려 다채로운 예술적 표현을 시도하는 김대운까지, 세 작가 모두에게 흙은 완벽한 형태를 빚기 위한 수단을 넘어, 흙 자체가 가진 취약성과 변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매개체다. 이들의 작품은 가마 안에서 불에 의해 뒤틀린 형태, 물에 의해 침식되는 과정, 의도된 균열과 흐름의 흔적 등을 전면에 드러내며 재료의 본질적인 특성과 마주하게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이헌정 작가의 도자 연작은 무지갯빛 광택을 내는 달항아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일그러지고 뒤틀려 있는 불안정한 형태를 띤다. 그는 "완벽함에서 벗어나되 아름다움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개입한다"고 말한다. 깨진 달항아리 파편들을 위태롭게 쌓아 올린 김대운 작가의 '페르소나 #2'는 인간의 연약함과 상처, 그리고 상처 입은 존재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조화를 이루는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붉은 흙으로 만든 1980년대풍 단독주택이 물속에서 서서히 해체되는 김주리 작가의 영상 작업 '휘경'을 만날 수 있다. 도시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서울의 풍경을 기록한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 앞에 소멸하는 존재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일본의 '와비사비'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전시는 세계적인 대형 화랑인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한국의 현대 도예에 주목해 1년 가까이 공들여 기획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갤러리 측은 이번 전시가 전통적인 도예의 관념에 도전하는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실험적인 시도를 조명하는 동시에, 도예라는 매개를 통해 글래드스톤과 한국 현대미술의 관계를 한층 더 깊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완벽함이라는 오랜 강박에서 벗어나 깨지고 무너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이번 전시는, 흙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재료가 현대미술 안에서 얼마나 새롭고 도발적인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