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호영 맞아?" 렘피카로 갈아입은 거친 마리네티

작성 : 2026.05.07. 오후 10:16
 데뷔 이후 줄곧 유쾌하고 화려한 에너지의 대명사로 불려온 배우 김호영이 뮤지컬 '렘피카'를 통해 연기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 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아티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이번 작품이 자신에게 있어 대중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목소리와 표현력을 증명할 소중한 기회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동안 예능과 무대를 넘나들며 쌓아온 밝은 이미지를 잠시 내려놓고, 거칠고 진지한 예술가의 내면을 파고든 그의 선택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인생 캐릭터' 탄생이라는 찬사로 이어지고 있다.

 

김호영이 열연 중인 작품 '렘피카'는 아르데코 시대를 풍미한 화가 타마르 드 렘피카의 파란만장한 삶을 조명한 뮤지컬이다. 2024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아시아 최초로 한국 무대에 오른 이 작품에서 김호영은 주인공 렘피카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미래주의 예술가 '마리네티' 역을 맡았다. 마리네티는 전쟁의 참혹함을 겪으며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냉혹한 신념을 가진 인물로, 김호영은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더해 캐릭터의 입체감을 살려냈다.

 


처음 배역 제안을 받았을 당시 김호영 스스로도 자신의 이미지와 배역 사이의 간극에 대해 깊은 고민을 거듭했다. 브로드웨이 원작 속 마리네티의 강렬한 외모와 목소리가 본인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션 현장에서 물병을 집어던지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창작진을 매료시킨 그는, 정형화된 틀에 박히지 않은 자신만의 마리네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동료 배우들조차 연습 과정에서 그의 변신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로, 김호영은 지난 24년간 아껴두었던 낯설고 강인한 목소리를 무대 위에 쏟아내고 있다.

 

이번 작품을 선택한 배경에는 화려한 출연진과의 호흡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작용했다. 평소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정선아, 차지연, 최정원 등 뮤지컬계의 거물급 선후배들과 한 무대에 선다는 사실은 그에게 커다란 자극이자 동기부여가 되었다. 서로의 열정을 확인하며 에너지를 주고받는 과정은 김호영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동료들의 압도적인 기량 속에서 자신 또한 멈추지 않고 발전해야 한다는 건강한 압박감을 즐기며 무대를 지키고 있다.

 


작품이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생존'에 대해서도 김호영은 남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한 여성의 분투기로만 여겼던 이야기가 연습을 거듭할수록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애쓰는 모든 인물의 처절한 선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2002년 데뷔 이후 대중의 시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상품'으로서 객관화하고, 쓰임새가 있는 곳을 찾아 묵묵히 걸어온 그의 연기 인생은 극 중 인물들이 마주한 생존의 기로와 닮아 있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이번 무대를 통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예능과 유튜브, 홈쇼핑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천후 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호영이지만, 그에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주는 공간은 여전히 무대 위다. 힘든 연습 과정과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무대에서 느끼는 신명은 더욱 강렬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늘 다음 행보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을 품고 살고 싶다는 김호영의 변신은 다음 달 21일까지 코엑스아티움 우리은행홀에서 계속된다. 배우로서의 한계를 깨부수고 새로운 지평을 연 그의 도전은 이제 막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